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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구급차 뺑뺑이’를 돌다 응급환자가 사망한 사건에 관련된 의료기관에 대해 행정처분이 내려졌지만 이러한 ‘땜질 처방’이 아닌, 문제의 원인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에 관련된 의료진을 사법당국이 구속함으로써 우리나라 특유의 응급실 과밀화 현상이 심화됐다면서, 이 문제의 해법으로 ‘일차진료 활성화’, ‘필수의료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지난 3월 대구에서 4층에서 추락한 10대 중증 외상환자가 구급차에서 2시간여 동안 응급실 8곳을 ‘뺑뺑이’ 돌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소방청·대구시와 합동 조사와 전문가 회의 등을 실시해 대구파티마병원,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4개 의료기관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린다고 지난 4일 밝혔다.

4개 병원들은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거부’를 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및 이행 시까지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받게 됐다. 또 대구파티마병원과 경북대병원은 중증도 분류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처분도 추가됐다.

그러나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할 병원이 없어 ‘구급차 뺑뺑이’를 도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도 5세 아이가 ‘급성 폐쇄성 후두염’ 증세를 보여 구급차에 실렸지만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SBS에 따르면 지난 6일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사는 5세 A군이 갑자기 40도까지 열이 오르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 증세가 나타나 구급차에 실렸지만 병원에 빈 병상이 없어 ‘뺑뺑이’를 돌다 결국 5번째로 방문한 병원에서 ‘급성 폐쇄성 후두염’ 진단을 받고 호흡기 분무 치료를 받고 상태도 안정돼 다음날 새벽 귀가했다.

그러나 A군은 귀가 후에 다시 증세를 나타내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말았고 다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40여 분 만에 숨졌다. 당시 4개 병원은 대기 환자가 많거나 야간 소아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특유의 ‘응급실 과밀화’와 ‘소아과 의사 부족’ 문제가 합쳐져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소방청의 '119구급서비스 통계 연보'에 따르면 구급차가 환자를 태우고 응급실에 갔지만 받아 주지 않아 재이송된 사례는 작년 한 해에만 전국적으로 7634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수치는 응급실까지 갔다가 거절당한 환자만 포함되기 때문에 최근 사건처럼 구급대가 전화로 수용이 어렵다고 통보받은 사례까지 포함한다면 ‘구급차 뺑뺑이’의 실제 사례는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작년에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을 일으켰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 2016년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김민건 군이 병원 13곳으로부터 치료를 거부당해 사고 7시간 만에 숨졌고, 119구급차를 탄 채 병원을 찾다 심정지나 호흡정지를 겪은 환자 사례만 해도 2022년 한 해에만 무려 190여 건에 이른다.

작년 재이송 사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전문의 부재(31.4%)로 나타났고, 병상 부족(17.1%), 환자·보호자 변심(4.9%)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이번 대구 사건처럼 ‘구급차 뺑뺑이’에 이어 문제가 발생하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에 대한 처벌을 내리는 식의 ‘땜질 처방’이 아닌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는 대구 사건 관련 4개 병원에 대해 당국이 행정처분을 내린 것과 관련해 “사망사고의 원인은 중증 외상응급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인프라의 부족과 병원 전 환자의 이송, 전원체계의 비효율성 때문임에도 병원이 이기적으로 환자를 거부한 것으로 몰아 행정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경증 환자의 119 이송을 중단하고 상급병원 쏠림을 줄일 대책을 마련하며 응급환자의 강제수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진료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감면하는 등 보다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특히 이형민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회장은 ‘일차진료 활성화’와 ‘의료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라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이형민 회장은 17일 기자와 통화에서 “‘구급차 뺑뺑이’ 문제는 최근에 언론을 통해 주목받고 있을 뿐 응급의료현장에서는 이전부터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면서도 “다만 소아응급의료 관련 문제가 더 빈번하게 발생하게 됐는데, 그 터닝 포인트는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에 관련된 의료진들의 구속’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정부에서 응급처치를 아예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응급 처치에 최선을 다하고 타과에 인계했다면 법적으로 책임이 없어야 하는데,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에 의료진의 의료행위에 대해 최선의 주의의무 여부를 따지는 소송이 더 남발되다 보니 점점 더 응급의료 적체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

이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소송이 더 남발되다 보니 의료진 입장에선 민형사상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MRI나 CT 등의 각종 검사도 더 많아지고 응급진료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려 응급실의 환자 대기도 더 많아지고 있다”며 “특히 소아환자의 경우 성인보다 증상 예측도 훨씬 더 어렵고 기대 여명도 높아서 진료가 더 어렵기 때문에 결국 경증 소아환자도 더 응급실에 많이 오기 때문에 응급실 과밀화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 사건 관련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의료진 7명은 이후 6년여 동안 법적 다툼을 벌인 끝에 최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이형민 회장은 이러한 문제의 구체적인 해법으로 ‘일차진료 활성화’와 ‘책임보험 가입’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일차진료, 즉 동네의원에서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할 수 있게 한다면 응급실에 방문하는 환자 수요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운전자 책임보험처럼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의료사고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필수의료나 응급의료에 대해선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이를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지원할 수 있게 한다면 응급실 과밀화 해소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의사신문(http://www.doctor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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