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병원을 떠돌다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반복되는 가운데 소방 당국이 대책을 내놨다. 119구급대에서 환자 정보를 다수의 인근 의료기관에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환자 중증도 분류 등 전반적인 응급의료체계를 정비하기로 했다. 소방청은 15일 이 같은 내용의 ‘이송 지연 최소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증 응급환자 중 현장에서 병원까지 1시간 이상 이송이 지연된 건수는 1만6939건이었다. 2019년 4332건 대비 4배 가까이 증가했다. 3시간 이상 지연된 건수도 2019년 22건에서 지난해 414건으로 폭증했다.

소방청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환자 이송 건수 자체가 증가했고, 코로나19 기간 발열 등 감염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수용 여부를 의료기관에 일일이 구급대원이 문의하며 시간이 지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응급실 병상과 의사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문제를 키운 원인으로 보고 있다.
소방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추진이 가능한 단기 과제와 연내 추진이 가능한 중기 과제, 보건복지부 등 관계 기관과 협의가 필요한 장기 과제 등 단계 대책을 내놨다. 단기 과제로는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응급의료기관이 참여하는 지역응급의료 협의체를 기반으로 이송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역 응급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또 소방의 구급상황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시·도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인력을 보강하고 직제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급대 이송 병원 선정 기준을 재정비하고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 준수를 위한 교육도 강화한다.
중기 과제로는 의료기관의 환자분류 체계(KTAS)와 호환되는 119구급대 환자분류 체계(PRE-KTAS)를 도입해 환자분류 기준을 올해 안에 통일한다. 의료기관은 환자를 가장 위급한 순서부터 5단계로 나누지만, 119구급대는 4단계로 나눠 체계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경증환자는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중증응급환자는 지역·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해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구급대의 구급단말기와 의료기관 전산시스템을 연동해 구급대에서 환자 정보를 다수의 인근 의료기관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도 만든다. 의료기관에서 수용 가능 여부를 전송하면 해당 병원으로 바로 이송할 수 있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구급 지도 의사 인력을 보강해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병원 선정·조정 과정의 전문성을 높인다. 경증환자 관리 등 제도적인 사항은 ‘중앙응급의료정책추진단’을 통해 부처 간 협의로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소방 당국의 ‘응급실 뺑뺑이’ 대책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료 현장에선 전문의 인력과 병상 수 자체가 부족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달 31일 입장문을 내고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뢰한 병원의 배후 진료 능력 부족 때문으로, 환자를 치료할 만큼의 의료 자원이 없었다는 의미”라며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 행태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은 중앙응급의료정책추진단에서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