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에 전공의도 외면”…응급실 등지는 의사들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률 하락…개원 선택 증가 “‘환자 사망 의사 탓’ 사법 판결에 부담 가중” 장기적 계획 및 인프라 확충 통한 해결 촉구 정부,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법제화 추진
전문의들은 응급의료가 무너져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응급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적 판결로 환자 보기가 두려워진 의사들은 응급실을 떠나고, 전공의 지원자도 감소세다. 의사가 없어 응급실 문을 닫는 병원들이 하나둘 늘고 의료 공백은 커져만 간다는 지적이다.
30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매년 100%에 달했던 응급의학과의 전공의 지원율이 올해는 80%를 넘지 못하고 있다. 55개 대학병원 중 강북삼성병원, 광명성애병원, 동국대일산병원, 일산백병원 등 7곳은 지원자가 아예 없었다.
반면 응급실을 떠나 개업에 나선 전문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총 2181명이다. 이들 중 350~400명이 응급실을 등지고 개원을 택한 것으로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추산했다.
응급실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론 의료 소송에 따른 사법 리스크를 꼽았다. 지난 2013년 소아 횡격막탈장 사건으로 응급의학과 의사가 1심에서 법정구속을 당한 일, 2014년 흉통 환자의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전공의가 거액의 민사 판결에 이어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일 등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최근엔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은 40대 만성신장질환자가 뇌 손상을 입으면서 의료진에게 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기도 했다.
관련 판결들은 예비 의사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의대생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응급실 5억원 배상 판결보고 결정했습니다. 수련 안 받고 일반의 하겠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의사하는 게 낫겠다’, ‘응급의학과 이제 아무도 안 가려고 할 듯’ 등 응급의학과를 기피과로 인식하는 게시글과 댓글이 이어졌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사법 판결을 놓고 의사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며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며, 그 의사들과 다르게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응급의료는 결과 예측이 불가능한 만큼 모든 환자를 살릴 순 없다”면서 “법이 이를 고려하지 않고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응급실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막고자 정부가 추진한 ‘이송거부 금지법’에 대해선 응급상황의 모든 책임을 응급실에 떠넘기는 법안이라고 일축했다. 이 회장은 “정책당국은 장기적 계획과 인프라 확충을 통해 해결하기보단 마치 응급실이 잘못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가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관계 당국과 유관기관들은 응급의료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논의와 행동에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법제화를 통해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으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것을 막겠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서울시청에서 지역·필수 의료 정책패키지를 알리는 ‘찾아가는 간담회’를 갖고,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권리 구제를 전제로 의사의 사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을 논의했다. 정상적 의료행위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라면 형사처벌하지 않도록 특례법을 적용하거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