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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돼 응급수술을 받았다. ⓒ서성진 기자

"중환자실이 없다." 

응급환자의 전원을 요청받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거절의 한숨과 함께 내뱉는 말이다. 또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들 역시 이 차가운 말에 좌절하고 자리가 나올 때까지 대기를 해야 한다. 

주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은 언제나 붐빈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져서 가동에 여유가 생겨도 금세 환자는 가득찬다. 특히 서울대병원의 상황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고 냉정하다. 

"바로 대응이 가능한 중환자실이 있다." 

누구나 듣고 싶은 희망의 얘기가 초응급이 아니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는 들렸다. 뇌출혈로 수술이 즉각 필요한 환자들도 병상 포화 탓에 외면받는 실정인데 모든 통로는 쉽게 열렸다.

의전서열 상층부의 힘은 생사의 공간에서 빛이 났고 이러한 혜택을 생각지도 못한 일반인들은 박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의료계 역시 이 부분에 공감하며 일제히 공분하고 있다.

9일 익명을 요구한 서울소재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서울대병원이 CT 등을 공개하고 과연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밝혀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가 응급실을 패스하고 중환자실로 올라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대병원이 당당하다면 야당 대표만을 위한 절차가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이미 의료계 내부에서는 특혜 의혹이 기정사실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후폭풍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응급환자 전원은 통상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가는 절차를 밟는다. 전원 이후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환자의 안전을 고려해 상태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전원을 의뢰받은 병원에 환자의 증상과 관련한 진료내역이 있어도 의료진 사이 완벽한 소통으로 자리를 빼놓지 않으면 응급실을 패스하고 중환자실로 이동되긴 어렵다. 

가뜩이나 서울대병원에서의 중환자실 직행은 기존 환자의 피해와도 직결되기에 일반인에게 적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생가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산대병원 의료진도 이 대표의 전원 과정에서 병원 간 핫라인을 통해 상황을 전달했겠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서울대병원 사이 민주당 인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의료계 중론이다. 

유인술 전 대한응급의학회 회장은 뉴시스를 통해 "민주당 측이 서울대병원에 얘기해서 서울대병원에서 전원을 받았다면 누군가는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헬기 이송 문제도 있지만 서울시와 서울대병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총 4대뿐인 SMICU(서울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 구급차를 노들섬으로 보낸 행위 자체가 직권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서울대병원은 본관 앞에 '진료목적 외 외부인 출입금지' 안내문을 걸어뒀다. 이 대표 전원과 관련한 비판이 가중돼 진료행위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대표 의료기관이 특혜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결국 이 대표의 진료상황만을 '5분 브리핑'하고 질문을 받지 않았던 서울대병원이 당시 중환자실 상황 등에 대한 전반적 내용을 신속히 공개해야 의문이 풀릴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 않다면 야당 대표만을 위한 응급의료를 제공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의료특혜 고발… 응급실 환자의 '전원 요청' 쇄도 

이 대표의 혈관재건술을 진행한 민승기 교수는 이식혈관외과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지만 지난 4일 언론 앞에 서서 "경험 많은 혈관외과 의사가 필요했다. 부산대병원 측의 전원 요청이 있었다"고 발언해 논란의 중심에 선 상태다. 

곧바로 부산대병원 측은 "경정맥 같은 혈관 손상 치료는 부산대병원 외상센터 의료진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 지난 8일 민 교수를 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피고발인에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천준호 민주당 당대표도 포함됐다.

각 시도의사회는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전원과 관련 전반적 행위를 의료 특혜로 규정했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서울중앙지검에 이 대표, 정 최고위원, 천 대표를 고발했다. 

점차 논란은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중환자실 직행은 중증 환자에게 직접적 피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중차대한 사건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각 지역의 응급실은 벌써 전원을 요구하는 환자들로 넘쳐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의료는 공평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계신 환자들에게 신뢰가 깨진 상황이 됐다"며 "과거에도 큰 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이제 그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일반인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혜택에 대한 불만이 분노로 전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 준비했던 응급의료체계 개편안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병원에 자리가 있는데 '뺑뺑이'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응급상황에서는 의전 서열보다 환자의 상태가 중요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다수의 의사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꼴"이라며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이 진행된 상태였는데 잘못된 선례로 인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고발장을 접수하며 본격 대응에 나선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직행 사건은 부당한 특혜 요구이며 일반 국민들의 진료와 수술 순서를 권력을 이용해서 부당하게 앞지른 새치기"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도 "응급체계 내에서 국민 생명은 사회적인 신분의 귀천과 재산의 정도와 무관하게 오직 위급한 정도에 따라 치료 우선순위가 결정돼야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이러한 기본적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해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빈 보건의료전문기자 ray@newdaily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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