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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살리려고 정부 10조 투입… 의료계 반응 냉담한 이유

윤석열 브리핑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통해 혼합진료 금지, 개원면허, 미용의료 제도 개선 등의 추진 계획을 밝혔다. 의료계는 위의 조치로 필수의료 현장이 더욱 큰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물론, 환자가 제대로 된 진료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뉴스1 DB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1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 수가 집중 인상, 공공정책 수가 도입과 확산 등 보상체계 강화를 통해 보상체계 공정성을 제고하겠다고 강조했다.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지역의료 인력을 충분히 확보, 인력난도 해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응은 어느 때보다도 냉담하다. 정부가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와 지역 의료인력 확보의 대안으로 내놓은 '혼합진료 금지'와 '개원면허' 때문이다. 의료계는 이번 정책으로 인해 벼랑 끝 필수의료가 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 비판하면서, 무엇보다도 '국민 건강 해치는 패키지'라는 우려를 쏟아냈다.

◇비급여 잡는 '혼합진료'? 질병 조기 발견·치료 저해 직결 
일단 정부가 예고한 혼합진료 금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혼합진료란 급여(보험) 진료와 비급여(비보험) 진료를 동시에 하는 것을 말한다. 혼합진료 금지는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함과 동시에 비급여 영역을 억제해 필수의료에 수익이 집중될 수 있게 한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는 혼합진료 금지가 당장 환자의 불편으로 이어질 것이며, 비급여 억제 정책은 필수의료를 오히려 더욱 악화하는 길이라고 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산부인과 전문의)은 "직장인 등 보통 사람들은 별도의 시간을 내 병원을 가는 일이 쉽지 않다"며 "병원에 간 김에 여러 문제를 한 번에 진료하고, 약을 받아와야 하는데 혼합진료가 금지되면 이런 일이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독감이 강력히 의심되는 환자라도 독감 검사를 한 후, 바로 독감약을 처방받지 못한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시행한 독감검사는 보험이 적용되지만, 독감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환자에게 독감약을 처방하는 건 비급여진료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 기침 증상과 함께 최근 급격히 체중이 줄고, 목 밑이 부어 갑상선 질환이 유력한 환자가 병원에 와도 감기약 처방과 함께 혈액검사만 가능하다. 전문가인 의사가 갑상선 질환이 의심된다고 해도 갑상선 초음파를 보험급여로 진행해야 한다는 '서류'가 없어서다. 이 환자의 경우, 갑상선 초음파로 질환 조기 발견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 질환이 의심된다는 결과를 받아야만 갑상선 초음파를 진행할 수 있다.

김동석 회장은 "꼭 필요하지만 건보재정의 한계로 급여권에 진입하지 못한 비급여는 항목은 생각보다 더 많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수가 영역이 완벽하지 않고, 그 보상도 불완전한 상황이다"며 "혼합진료 금지는 환자가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건 물론, 수가가 낮은 필수의료 영역으로의 의사 진입을 막는 일이다"고 했다.

이어 그는 "혼합진료 금지는 비급여 진료하는 의사는 환자를 돈벌이로만 본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다"며 "비급여 진료와 이를 시행하는 의사를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행위로는 결코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필수의료과 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열악하다는 소아청소년과의 전망도 비슷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아이들은 더욱 정확한 진료와 치료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비급여 진료가 필요하기도 하다"며, "혼합진료 금지는 현장에서 절대 불가능하며, 시행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혼합진료가 소아청소년과 소멸 위기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도 했다. 임현택 회장은 "동네는 물론이고 대학병원에서조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보기 어려워진 주요 원인에는 낮은 수가가 있다"며, "그나마 소아청소년과 병원 운영을 가능케 하는 건 불가피하게 시행하는 비급여 진료인데, 이를 금지하는 건 소아청소년과를 더욱 철저히 망하라고 떠미는 일이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수차례 정부에 소아청소년과 수가를 제대로 인상해주면서 비급여 영역을 관리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이번 정책패키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촌각을 다투는 진료 현장에 있는 응급의학과는 혼합진료 금지를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응급실은 급여·비급여를 따져가며 진료를 할 여력이 없다.

한림대병원 응급의학과 이형민 교수(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는 "응급실에 온 환자는 어떤 문제가 있는 지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므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각종 검사를 해야 한다"며, "최선의 진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혼합진료 금지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정책패키지가 시행되면 혼합진료를 하고 나서 의사에겐 처벌이나 수가 삭감 등의 불이익이 생길 것이다"며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그걸 알고 있음에도 당장 눈앞의 환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텐데 필수의료가 어떻게 살아나겠느냐"고 말했다.

◇연수·신고제로 이미 질 관리… 개원 금지, 개인 자유 침해도
의료계는 면허관리 선진화 차원에서 추진하는 개원면허 도입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표했다. 개원면허란 의사 면허와 별도로 일정 기간 임상 수련을 마친 이에게만 개원 자격을 주는 것이다. 영국, 캐나다 등에선 시행 중인 제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대 정원을 확충하되 신규 의사인력이 비급여 미용 의료를 위한 개원의가 되는 일을 막고자 개원면허 단계적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동시에 미용 의료 영역은 시술 자격 개선 등을 포함한 종합적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김동석 개원의협의회장은 "개원자격을 제한하는 건 엄연히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침해하는 행위"라며, "개원을 했다고 해서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게 없고, 개원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직원을 채용해 고용창출에 기여하는데 왜 개원의를 악의 축으로 취급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개원의들은 이미 주기적으로 연수를 하고, 평가를 통해 자체적으로 질 관리를 한다"며 "늘어난 의대생이 미용 의료를 위해 개원하는 걸 막으려면, 필수·지역의료 수가를 인상해야지 개원 자체를 막는 방식을 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소아청소년과는 개원의가 없어 일차의료가 무너지면서 의료체계 전반이 무너졌다"며 "개원 장벽을 더욱 높이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필수의료 패키지는 인위적으로 개원 진입 장벽을 높이고, 각종 규제로 개원가를 비롯한 의료환경을 황폐화시켜 의사를 반강제적으로 고위험·고난도 저보상 진료 영역으로 몰아넣으려는 최악의 보건의료 망책이다"고 말했다.

과잉 경쟁 영역이자 미용 의료의 대표격인 피부과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피부과 전문의는 "충분한 수련을 받지 않고 미용 의료 시술에 뛰어드는 의사가 분명히 있고, 이들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라 의료질 관리가 필요한 측면은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한국의 미용 의료 영역은 경쟁이 워낙 심해 자체적으로 질 관리가 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기술이 뛰어나 의료관광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비급여 영역이라 보험 재정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데 이를 정부가 규제한다는 건 산업 성장을 막겠다는 뜻으로밖엔 풀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의 치료선택권을 제한하는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와 개원면허 및 면허갱신제 도입 등 의사면허에 대한 통제 및 규제를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의협은 이날 오후 성명서를 통해 "의료계와 충분한 소통 없이 발표된 ▲국민의 치료선택권을 제한하는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사망사고 및 미용·성형을 제외한 제한적 특례적용 범위 ▲개원면허 및 면허갱신제 도입 등 의사면허에 대한 통제 및 규제 등에 대해서는 큰 우려와 함께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협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실효성을 담보하고 의료계의 각종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개개의 사안에 대한 향후 실천 로드맵 마련 시 전문가단체인 의협과 반드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2/01/20240201030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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