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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검체채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3년 차 간호사 김모씨(25)는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눈코 뜰 새가 없다.

3교대 근무 중 오늘은 오후 3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이브닝 근무다. 곧 퇴근을 앞둔 10시가 다 돼가지만 7시간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김씨가 담당한 외과 병동에 수술 환자가 밀려 수술 전후 처치와 쉴새 없는 환자들의 콜에 응하느라 본인의 끼니를 챙길 시간은 없다.

한시도 앉을 틈 없이 바쁜 김씨를 보다 못해 내일 퇴원을 앞둔 한 환자가 편의점에서 에너지바와 음료수 등을 챙겨 김씨에게 슬쩍 건네주고 간다. 원칙적으로는 환자에게 사례를 받는 것은 금지됐지만 그래도 이런 날 간식거리를  건네주는 환자가 눈물이 날만큼 고맙다. 환자들 상태를 체크할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식사는 잘 하고 계세요”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병원에 들어온 후 그 식사조차 제대로 챙겨본 기억이 없다.


퇴근 때까지 정신 없이 움직이는 김씨가 딱해 보였는지 가끔 환자들이 ‘매일 그렇게 일해도 괜찮으냐’라고 묻는다. 김씨는 “퇴근하면 바로 뻗어서 자고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출근하는 일상의 반복”이라며 “솔직히 얼마나 더 버티고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덤덤하게 답한다.

원하던 대학병원 간호사가 돼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던 것도 잠시, 하루하루 몸이 축나는 경험을 하며 어렵게 들어온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왜 그만두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고된 업무에 시달리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자 간호사 퇴사율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대학병원은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학을 갓 졸업한 저연차 간호사들로 충원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악순환의 반복이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으로 재부각

“땜질 처방 아닌 근본적 대책 절실”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중인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사건은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지난달 7월말 아산병원에서 근무중인 간호사 A씨는 오전 출근 직후 뇌출혈 증상으로 쓰러진 뒤 사망했다. A씨는 즉시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아산병원에 응급수술을 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됐다가 끝내 숨졌다.

우리나라에서 정상을 다투는 상급 종합병원에서 수술할 의사가 없어 근무중인 간호사가 사망했다는 믿지 못할 뉴스는 충격을 불러왔다. 정부는 서둘러 응급의료체계를 정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필수 의료인력이 점점 부족해 남아있는 의료진의 피로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 의료계의 비극을 상징한다.

특히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계의 피로도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신속한 대응체계에 대해 의료진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지만 겉과 달리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 갔다. 턱없이 부족한 필수 의료 시스템 안에서 피로누적으로 쓰러지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이제는 격무의 문제만이 아니라 당장 의료진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 인력 확충 등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지난달 5일 브리핑에서 “필요하지만 여러 여건상 원활하지 못한 필수 의료 부분을 확충하고 강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 대변인은 “보상을 비롯한 여러 재정적인 지원 방안과 의료인력을 포함한 진료현장의 실질적인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 각 단체들도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필수 과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대우와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의대 정원 늘어도 외과 전문의 등 줄어

“중증 외과 수술 등 의료수가 높여야”

 

실제로 중증·응급 환자를 다루는 필수 의료 부문의 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전국의 의대 정원은 2500명에서 3458명으로 1000여명 가까이 증원됐지만 한해 배출되는 외과 전문의는 220명에서 140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중증 외상·응급수술·복잡한 심혈관계 질환 전문의 숫자는 더욱 가파르게 감소했다. 필수 의료 부문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수치상의 의료 인력 확보가 아닌 필수 의료 부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뇌혈관외과) 교수는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과 관련해 한 기사 댓글을 통해 “(이 사건의) 본질은 우리나라 ‘빅5’ 병원에 뇌혈관외과 교수는 기껏해야 2~3명이 전부라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큰 아산병원에서 뇌혈관 외과 교수 달랑 2명이 1년 365일을 퐁당퐁당 당직을 서고 있는데, 과연 국민 중 몇 프로가 50살을 넘어서까지 인생을 바쳐서 과로하면서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뇌혈관 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진료비)로 인해 지원자도 급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도 성명을 통해 “아산병원 간호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필수의료 논의가 산으로 가며 단편적인 조급한 대책과 분노에 찬 목소리만 보인다”라며 “필수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장기적 인력계획과 함께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신규 확진자 수가 8만5295명을 기록한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전담병원의 처참한 현실

3년간 적자 누적으로 폐업 사례도 속출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난 손실에 맞닥뜨린 의료기관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3년간 팬데믹 상황 속에 가장 최전선에서 의료 업무를 담당한 코로나19 전담병원들이 오히려 막대한 손실은 물론 심할 경우 문을 닫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코로나19 전담병원은 모두 해제됐지만 그동안 쌓인 병원 인력들의 피로도와 경제적 손실이 커진 탓이다. 여기에 전담병원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병원에 대한 손실보상금, 인력 파견 등 정부 지원도 대부분 사라졌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들은 인력 이탈 및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의료진이 그만두는 등 인력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될 경우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집중하게 된다. 의료진들은 각자의 전문분야가 아닌 코로나19 환자 진료에만 주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지쳐 나가떨어질 만큼 격무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해 퇴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환자들 또한 코로나19 전담병원은 ‘코로나 환자들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져 전담병원 해제 이후 일상적인 환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재정난을 겪고 있는 병원도 적지 않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 대해 손실보상금을 약속했다. 전담병원이 해제된 후 다시 일반 병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병원에 손실이 났을 경우 최장 6개월의 회복기간 동안 보상금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조항을 추가해 보상금 규모를 줄였다. 지침에는 ‘의사 수가 20% 이상 감소한 경우’에 보상금을 감액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당연히 요양병원 등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전담병원 해제로 병상 가동률이 크게 줄어들었는데 의료진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맞추라는 셈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손실보상액 30% 줄어

“급할 때 ‘희생’만 요구하는 정부 자세가 문제”

 일단 정부는 전담병원의 손실보상 지원 규모를 줄여나갈 방침이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 따르면 코로나19 의료기관 손실보상액은 올해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복지부의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 및 운영’ 사업 예산에 따르면 코로나19 전담병상 등 의료기관 등 손실보상은 올해 1조 1100억원에서 내년도 6935억원으로 4165억원이나 줄었다.

문제는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0만명대를 기록하며 늘어난 확진자들은 코로나19 전담병원이었던 의료기관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전담병원들은 다시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로 의료진이 퇴사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서울시내 한 전담병원에서 퇴사한 의사는 “코로나19 발발 초기에는 정부의 지원이 충분했다”라며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지원은 줄고 전담병원 지정에 대한 책임은 개별병원이나 의료진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커져갔다”라고 말했다. 이어 “업무 피로도는 계속 가중되면서 이러다가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번아웃’이 올 것 같아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정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의료계가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급할 때는 의료계의 ‘희생’을 요구하다 상황이 바뀌니 지원금을 줄이는 등 ‘겉 다르고 속 다른’ 처사와 탁상공론에 머무는 행정을 반복한다는 데 있다. 병원은 생존권을 걸고 코로나19 전담병원을 자처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막대한 손실이라는 피해의식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코로나 19 이후 병원 퇴사자들이 늘면서 업무 부하가 많은 의료인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교육을 반복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력이다. 수치상의 인력 확충이 아닌, 실제 의료인들이 생활의 균형감을 가지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의료인들에 대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며 이를 숭고함으로 포장하는 분위기는 사라져야 건강한 의료 시스템이 장착될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

출처 : 주간한국(http://weekl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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