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과 달랐던 '이태원 참사' 현장…"재난 대비 안 돼 있다"
응급의학醫 이형민 회장, 현장 통제 미흡 지적 "현장은 매뉴얼과 달라…살아날 환자부터 이송했어야"
이태원 압사 사고에서 현장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의료계 지적이 나왔다. 현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중환자들이 응급 처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한림대성심병원)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개원의협의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이번 사고 대응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재난 상황에서는 가장 가까운 병원의 역할과 그다음 단계 병원의 역할이 다르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재난 매뉴얼 제정과 훈련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응급의료체계와 재난대응체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안전에는 돈이 들고 똑같은 재난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 재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지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학적 대응을 요한다면 최소 보건복지부나 의료인이 이를 지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30일 오후 3시 30분 기준 153명으로 늘었다. 사망자 중 외국인은 20명이다. 부상자도 당초 발표(82명)보다 늘어 103명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는 중상이 24명, 경상이 79명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개원의협의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태원 압사 사고 대응 과정에서 현장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청년의사).
-이번 사고 초기 대응이 적절하게 이뤄졌다고 보나.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대응팀이 상황을 인지하고 권역응급의료센터 재난대응팀이 현장에 출동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적절했다고 본다. 재난대응팀이 도착한 후 현장 정리도 잘 된 편이다. 재난에 대비해 매년 실시한 훈련의 성과다. 현장이 서울 한복판이었는데 환자들이 서울 전역으로 빠르게 배분된 것도 이전보다 진일보한 점이다.
-반대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실 재난 현장에선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재난 상황 1순위는 중환자다. 아직 호흡하고 응급 조치를 취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우선순위여야 한다.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은 이런 중환자가 우선 배정됐어야 했다. 그런데 어제는 심정지 환자가 순천향대서울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때문에 중환자 처치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병원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 차량 통제가 안 돼 중환자 이송이 어려웠던 점도 아쉽다.
-왜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발생했을까.
현장 통제가 제대로 안 됐다. 환자가 이송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현장에서 일반인을 배제하고 중환자를 우선 구조해야 했다. 시민들이 현장에서 CPR을 하고 환자를 업고 나오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됐다. 그건 제대로 된 재난 대응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새벽 2~3시까지 20여명을 심폐소생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장이 통제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통제율이 최소 60~70%는 돼야 하는데 이번에는 사상자 100명 중 80명은 현장 통제를 받지 않고 이송됐다.
-현장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재난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현장을 컨트롤해야 한다. 현장에서 무엇을 할지 지시하고 허가하는 역할을 누가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의료체계는 있었지만 실제 이를 컨트롤할 행정 체계가 미비했다는 뜻인가.
재난에 대응할 연습이 부족하고 준비가 부족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아무리 교육해도 실제 현장은 그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실질적인 것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한다. 재난매뉴얼 자체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다. 그런데 지금 현장에서 그 매뉴얼이 실제로 지켜지느냐 하면 아니란 뜻이다.
-앞에서 현장 통제가 없어 심정지 환자가 인근 병원에 우선 이송된 점을 지적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재난으로 인한 사망자가 병원 (응급실)에 이송되면 그 병원은 마비된다. 이전 삼풍백화점 참사 때도 사망자들이 인근 강남성심병원에 이송돼 병원이 마비됐다. 재난 상황에서는 가장 가까운 병원의 역할과 그다음 단계 병원의 역할이 다르다. 그러나 현장이 이를 통제하지 못하면 의료 대응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망자는 별도로 관리돼야 한다.
인천에서 100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인하대병원 등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10여명이 현장에 간 적이 있다. 막상 현장은 환자들이 모두 임의로 이송된 뒤라 의사가 할 일이 없었다. 현장이 통제되지 않으면 밀려드는 환자에 병원은 혼란에 빠지고 현장에 나간 의료 인력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어제 현장에서 많은 시민이 자원해 CPR을 시도했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시민이 할 일은?
일반인이 거기서 CPR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렇게 나선 당사자들의 심정은 당연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CPR이나 구조는 현장 인력에게 맡겨야 한다. 남아 있는 시민들이 뒤돌아서서 서로서로 벽을 만들어 현장 노출을 막고 다른 시민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해주면 대응에 도움이 된다. 또 최대한 빨리 현장을 빠져나가고 현장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어제 사고 현장은 방송에 그대로 노출됐다.
방송이 해야 할 일은 현장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빨리 주변을 비우고 재난 현장에 가지 말라고 안내하는 것이다. 어제 지상파 3사와 YTN 등 언론의 방송 태도는 유튜브 방송과 차이가 없었다.
-정부는 대책 중 하나로 지역 축제까지 안전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지역 응급의료체계가 이번 사고 같은 재난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나.
저는 아이들에게 사람이 5만명 이상 모이는 장소나 행사는 가지 말라고 한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 6만명이 모였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1만명당 20명꼴로 응급의료상황이 발생한다고 본다. 그런데 경증에서 중증까지 60~70명 이상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과연 이를 대처할 준비가 돼 있을까. 당연히 안 돼 있다.
제가 일하는 병원(한림대성심병원)이 경기도에 있고 저도 병원 재난관리팀 소속이다. 경기도에서 만약 이런 일이 생기면 제가 현장에 간다. 재난에 대응할 별도 인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전날 응급실 당직을 한 의사가 다음날 재난 담당을 맡아야 한다. 지침이 존재해도 실제 기능이 따라가지 못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재난 대응 체계 개선을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안전에는 돈이 들고 세상에는 똑같은 재난이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보여주기식 지침을 만들고 눈에 보이는 연습은 그만둬야 한다. 실질적인 연습을 하고 대비를 할 때다. 또한 재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컨트롤할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지금 소방 부문이 담당하고 있는데 의학적 대응이 주가 돼야 하는 상황에는 최소한 복지부나 의료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출처 : 청년의사(http://www.docdoc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