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빠진 '공공병원' 확충 논의 속도…의료계 '심기 불편'
'의사' 빠진 '공공병원' 확충 논의 속도…의료계 '심기 불편'
병상 과부하 속에 공공병원 확충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당사자인 '의사' 제외한 논의에 '발끈'
현 공공병원 열악한 근무환경·시설로 인해 의사 '기피'…병원 증설에 따른 인력 증원 논의 '경계'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9.2 노정합의 이후로 지지부진했던 공공의료 확충에 국회가 입법활동을 통해 팔을 걷어붙이면서 공공병원 증설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병상 과부하 속에 공공병원을 증설하는 데 대한 의료계의 우려에도 불구, '의사'가 빠진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여당과 정부가 공공병원 확충을 추진하면서 그로 인해 파생될 의료인력 확충 논의에 의료계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안산단원갑)이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보건의료법)과 '국가재정법'을 대표 발의하고, 지난 18일에는 전국보건의료노조(이하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의료 강화 3법 개정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미 우리나라 병상 수가 과부하 상태에 있고,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쏠림 현상의 심화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공공병원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의료계의 우려에도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법적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9월 2일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간의 '노정합의'의 결과로, 당시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료 강화의 차원에서 공공병원 증설을 요구해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바 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공공병원 설립 시 예비타당성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재정법'과 국민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에 따른 공익적자 지원 근거를 담은 '공공보건의료법'을 대표발의했다.
또 복지부에게는 지방의료원 등 지역거점공공병원의 조속한 확충을 위해 국비분담율을 70~80%까지 확대하는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촉구했다.
이 같은 입법활동에 이어 민주당은 지난 18일에는 전국보건의료노조와 함께 '9.2 노정합의 후속이행과 취약한 공공의료확충을 위한 공공의료 강화 3법 개정 토론회'를 개최해 해당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권덕철 보건복지부장관이 직접 참석해 현장축사를 하는 등 복지부 역시 노정합의 이행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날 권 장관은 "9.2노정합의 과정에서 조마조마했다. 충분히 숙의 과정 거쳐서 안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정성을 가지고 노정합의에 임했기에 대의원들이 찬성한 것 같다. 그래서 책임감 무겁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 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공공의료강화 위해 공공병원수 확충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현재 가장 큰 장애물은 민간의 공급과잉 문제이다. 현재 예비타당성 면제 신청을 한 2곳 중 한 곳인 광주도 민간 공급과잉이 가장 큰 문제였다. 현재 예타면제와 공공병원의 공익적 적자에 대한 지원방안에 대해서는 현재 용역중이고, 현장의 의견을 경청하여 복지부 차원의 노력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해당 토론회에는 공공병원 증설을 반대하는 민간 의료기관 측 토론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처럼 국회와 정부가 의료계를 배제한 채 일사천리로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행동에 나서면서,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은 불안해지고 있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이미 민간 의료기관들이 지역에서 '공공병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늘어날대로 늘어난 병상 포화 상태에서 공공병상이 늘어날 경우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의료병상 수는 OECD 국가 최고 수준으로 일본에 이어 2번째로 많은데,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요양기관 허가병상 수는 71만 6,292개에 달한다.
전체 의료병상 수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공공보건의료병상 비율은 10.3%로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공병원 증설을 주장하는 측은 일본의 공공보건의료병상 비율 27.2%, 프랑스 62.4%에 비해 우리나라의 공공병상 수가 지나치게 낮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연구소 안병기 연구소장(우송대학교 보건의료경영학과)은 정부 여당 등에서 주장하는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비중은 우리나라의 넘쳐나는 의료병상 수 문제를 외면해 과소 산출되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병상 공급 추이는 '공급 과잉'의 상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신·증설 제한 등 병상 관리를 위해 병상총량제 등도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계는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정부가 공공병원 확충을 추진하는 것은 '포퓰리즘' 그 이 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비판이다.
지역의사회의 공공병원에 대한 인식은 더욱 비관적이다.
강원도의사회 김택우 회장은 "기존 공공의료기관들이 보건소부터 의료원까지 공적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 민간의료기관과 실적을 겨루면서 부당 경쟁을 하며 지역 의료체계를 왜곡시켜 종국에는 오히려 지역의 의료접근성을 악화시켜오고 있다"고 지적했고, 충청남도의사회 박보연 회장은 "도내 일부지역의 공공병원은 정치인의 업적을 위한 포퓰리즘 악행을 저지르고 있어 민간의료시장의 붕괴가 초래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의료계의 비판을 무시한 채, 의료계와의 논의 없이 '그들 만의 리그'로 진행되고 있는 공공병원 증설 정책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의협은 공공병원을 증설할 경우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의료인력 증원 즉, 의대 증설 논의를 경계했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공공의료 확충 논의는 당사자들인 의사들의 의견이 완전히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노정합의는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합의다. 노조 입장에서 당사자인 노조 회원들의 근무환경, 인력 확충 들을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의 직역의 인력 증원, 공공의대 설립 나아가 공공병원이라는 의제까지 다룰 수는 없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특히 "현 공공병원에 의사들이 가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형편없는 시설과 의료 장비, 근무 환경으로 임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의사들이 몇일만에 도망나오는 것이다"라며, "현재 있는 공공병원을 먼저 활성화하고, 제대로 공공의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러한 조치 없이 무작정 공공병원을 늘리고, 어떻게든 의사인력을 채워 운영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