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151명이 생명을 잃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재난 현장 관리에 문제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인근에 많은 인파가 몰려 151명이 압사하고 82명이 부상을 입어 모두 2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지난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에서 일어난 최악의 인명 피해로 기록됐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 구급대원들과 시민 등 수십 명이 부상자들에게 일제히 심폐 소생술을 하는, 마치 재난 영화와 같은 장면이 언론을 통해 시시각각 보도됐다. 사건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의사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재난에 대한 올바른 대처 방식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회장(사진, 평촌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30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재난대응팀은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했지만 재난 현장 관리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면서 “재난현장에서 심폐 소생술을 할 게 아니라 우선 생존 가능성이 높은 중환자들부터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심폐 소생술이 필요한 부상자들은 사실 생존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에 중환자들을 먼저 챙겼어야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사망한 분들이 가장 먼저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 응급실로 이동됐고, 이로 인해 교통 체증까지 더해져 생존 가능성이 높은 중환자들이 제때 응급실에 이송된 다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사고 현장 통제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고 발생 당시 현장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이태원 일대의 교통 통제도 제대로 되지 않아 부상자들을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 주변에 있던 많은 유튜버나 일반 시민들이 심폐 소생술 장면을 현장에서 촬영해 여과 없이 내보냈다.
이형민 회장은 “사망자 중 최소 80명 이상은 현장의 통제를 벗어나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로 인해 각 병원의 응급실에 사망자들이 먼저 들어와 있어서 생존 가능성이 높은 부상자들에게 제때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일반인들이 사고 현장에서 심폐 소생술을 시행했던 것에 대해서도 “물론 그분들이 숭고한 정신으로 행했던 행위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심폐 소생술을 받은 분들의 대부분은 사망하셨을 것”이라면서 “심폐 소생술은 인력이 충분하다면 전문가들이 하는 게 원칙이고, 차라리 일반인들은 사고 현장이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도록 통제를 해 주거나 심폐 소생술 장면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도와주셨으면 더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서 있었던 심폐 소생술 장면이나 사망자들을 모포로 덮은 장면을 그대로 내보낸 언론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형민 회장은 “언론들이 유튜버들과 다름없이 사고 장면을 여과 없이 찍어 내보내는 바람에 희생자들의 인권이 침해됐고, 몰려든 취재 차량이나 인력들로 인해 현장의 혼란과 교통 정체가 더 심해져 현장 통제가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김윤성 응급의학과의사회 학술이사(삼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는 유럽축구대항전에서 선수가 쓰러져 심폐 소생술을 받았던 사건을 상기시키며 우리나라 언론의 재난 사고를 대하는 자세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작년 6월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크리스티안 에릭센 선수가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20) 핀란드전 도중 쓰러져 심폐 소생술을 받은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동료 선수들은 심폐 소생술이 진행되는 모습을 가려줬다.
김 이사는 “외국에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덮어주고 시작하는데 우리나라 시민들은 물론이고 언론까지 앞 다투어 촬영하기에 바쁘다”고 참담함을 나타내며 “당시 에릭센 선수가 제때 응급 치료를 잘 받은 덕분에 회복해서 지금도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재난 현장의 컨트롤 타워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긴급 재난이 발생하면 누구에게 무엇을 허락받고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호주의 경우 건물 공사를 완료하려면 의료인이 안전 진단을 마치고 최종 사인을 해야 허가가 난다”며 “우리나라도 재난 상황을 의료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며 앞으론 재난상황에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일 이태원 참사에 달려간 의사들처럼 선의로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형민 회장은 “일명 ‘선한 사마리아인법’이 존재함에도 이런 분들에 대한 법적 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호익 대한개원의협의회 대외협력부회장은 “‘선한 사마리아인법’의 핵심은 선의의 의료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것인데 만약 환자가 사망할 경우에는 형사 책임의 ‘면제’가 아닌 ‘감면’만 하도록 하고 있어서 문제”라면서 “만약 대부분의 의사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이태원 참사’ 현장에 달려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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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의사신문(http://www.doctor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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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